1.
2014년 영국.
지구와 인간과 로봇의 행복한 상생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인공지능 로봇 회사 "프렌즈" 는
망가진 지구의 환경을 되살릴 단 하나의 프로젝트, "Save The Earth Solution" 을 런칭합니다.
위대한 순간입니다. 지구는 어떤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까요?
2.
아뿔싸.
한 가지를 잊었군요.
지구를 지키라고 했지 인간을 지키라곤 안 했잖아요.
설마 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겠어요?
그런... 인류의 오만이었습니다.
3.
인공지능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없애기로 합니다.
그리고 "지구상에" 로 인식 되지 못한 공간에,
"인간" 으로 인식 되지 못한 존재가 있었습니다.
인공지능은 이제, 미처 없애지 못한 그들을 쫓기 시작합니다.
4.
그래요.
이곳은 인류 최후의 요새, 노아의 방주, 호그와트.
우리의 얘기는 이곳에서 시작됩니다.
■ September, 2014
온 세상을 편리하고 또 살기 좋게 만들어 준다는 인공지능 프로그램, Buddy.
올해 초부터 바깥세상은 온통 그 프렌즈라는 회사에만 열광 중입니다.
머글들의 가정에도 직장에도 거리에도 함께하는 그 로봇들이 생각보다 말을 안 듣는 오류가 있는데도 말이에요.
그들의 친구에 들어가지 않는 건 아마 우리 뿐일 겁니다.
마법의 세계에는 로봇이 도와줄 일이 없으니까요. 그렇잖아요?
길거리와 집안 곳곳을 깨끗하게 만들어 줄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왜 필요하겠어요?
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우리는 머글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문으로 들어섭니다.
열차는 기적 소리를 울리고, 마법의 모자는 노래를 부릅니다. 설레는 입학식입니다.
■ November, 2017
세상은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.
최근 머글 세계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커다란 사고 소식들뿐입니다.
인공지능이 운전하는 이동수단들이 자꾸만 사고를 일으킨다나요.
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. 우리 얘기는 아닌 것 같지만요.
왜냐면 우리는... 마법사잖아요?
믿을 수 없는 기계의 프로그램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마법사요.
하지만 무서운 얘기들도 들려오고는 합니다.
마법 앞에 하잘 것 없을 그 기계들이, 인류를 멸망시키리라는.
4학년,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 머글 연구가 필수 과목이 된 지도 벌써 1년 하고도 두 달째입니다.
온 세상에 마법이 있었다면 끔찍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.
■ January, 2021
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.
아니,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지고 난 후입니다.
우리가 학교에 남아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한 건 지난 방학부터였습니다.
마치 인격이라도 가진 듯 건물을 무너뜨리고 탄두의 발사 버튼을 누르며 오로지 인류를 없애는 데에만 열중하던 인류의 친구, 버디.
그곳에 더 이상 없앨 인간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걸까요?
그들은 인류 외의 또 다른 존재를 알아채버린 듯, 우리를 추적해오고 있었습니다.
7학년, 해피 뉴 이어. 우리끼리 전하는 인사.
마법사의 세계마저 침몰시키려는 그 문명을 막기 위해, 어른들은 하나둘씩 우리의 곁을 비워갑니다.
우리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요?